[여성 스토리]신성한 병역 의무에 할 말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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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은 1977년 유엔이 지정한 세계여성의 날로 여성의 정치, 경제·사회적 업적을 기리는 날이다. 1908년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불타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미국 노동자들이 궐기한 날을 시작으로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해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 스위스 등으로 펴져나갔으며, 여성의 자유, 참정권, 인권 문제를 중심 주제로 지금도 그 싸움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여성의 차별에 대해 싸워온 성과들을 기념하는 날에 한국 사회에 남아 있는 병역의 의무와 여성 차별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한다. 

얼마 전 여성용품을 만드는 한 기업에서 여성지원자에게 성차별적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지며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여성지원자에게 ‘여자는 군대 안 갔으니까 남자보다 월급 덜 받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군대 갈 생각이 있나’ 등을 물었다는 것입니다.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거리낌없이 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 질문 속에 녹아있는 남성 우월주의와 피해의식에 많은 남성들이 공감하며, 병역의 의무를 성 대결 갈등으로 인식하는 있는 현실이 더욱 안타깝다.  

이 문제는 성 대결 갈등도 아니고, 성 대결 갈등으로 해결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국방의 의무를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에서 살펴보고, 성차별과 성 대결 갈등으로 다루는 것이 얼마나 의미 없고 소모적인 논쟁이며, 해결을 위한 의식전환과 대안을 짚어보고 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더불어 여성들이 이런 질문을 받아 위축되고 기회를 잃지 않고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힘이되고 싶다.




전쟁의 기원

국방의 의무가 어떻게 발생하게 알기 위해서는 전쟁이 왜 시작되었는지 이해해야 한다.

역사학자들은 원시전쟁의 원인(동기)을 자원의 부족, 기아, 흉작과 같은 생존의 동기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현대 문명사회의 전쟁도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모든 전쟁의 이면에는 국가의 이익 충돌이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쟁에서는 부와 생산수단을 상징하는 소유물들이 탈취되거나 파괴된다. 이는 공격자들에게 이득이 되지만 동시에 방어자에게는 피해로 돌아간다. 심지어 승자들은 패자들의 시신까지도 전리품으로 취하는 등 피해를 가할 수 있다. 문명과 문명 이전의 사회를 막론하고 전투 당사자들이 경험하는 이득과 참상은 전사자, 전상자, 실종자 숫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중략> 원시부족들이 전쟁을 하는 이유에 대해 일단의 사회과학자들이 무엇이라고 주장하건 이들도 문명집단과 마찬가지로 귀중품이나 토지를 포함하여 전쟁에서 나오는 전리품들을 차지하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원시전쟁에 대해 가장 유명한 인류학자인 앤드류 베이다(Andrew Vayda)는 원시전쟁과 문명전쟁을 비교하며 그 유사함을 무시하는 일부 사회과학자들의 은폐주의를 비판한다. 이 ‘유사함’이란 바로 원시와 문명 단계의 전쟁 모두가 영토 점령과 인구집단의 재분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로젠스H, 킬리 [원시전쟁] 중에서 발췌




원시전쟁의 시작은 생존 수단 중 하나였다. 흉작으로 인해 먹을 것이 부족해지고, 살기 위해 옆 마을을 기습하고 먹을 것을 강탈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전쟁을 통해 승자는 모든 것을 갖고 (The winner takes it all), 패자는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학습하게 되었고, 전략적이고 정치적인 전쟁의 수행과 방어로 발전하게 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전투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공격이 고도화되면 자연스럽게 방어도 고도화되는, 반대로 방어가 고도화 되면 그 방어를 뚫기 위해 공격도 고도화 되는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의무의 탄생

국방의 의무는 국가의 탄생에서 시작된다.

국가 이전의 사회 조직인 씨족, 부족, 군장사회와 국가의 다른 점은 폭력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각 개인은 국가와 보이지 않는 사회계약을 맺고 권리와 의무를 통해 공동체의 일원이 되며, 중앙정부가 세금을 거두고, 공공사업이나 전쟁에 필요한 인력을 동원하며, 법을 제정하고 물리적으로 강제한다는 점이다. 궁극적으로 국가란 폭력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며, 여러 계급으로 구성된 정치 단위이다. 이러한 독점권이란 상시적인 경찰력이나 군대 형태로 제도화되었다.

비로소 국방의 의무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국방의 의무는 남성의 몫인가?

앞서 언급되었듯이 전쟁은 생존을 위해 시작되었고, 생존이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그 개인이 속한 공동체 사회의 지속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인간은 공동체 생활을 통해 진화했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와해되는 것은 또 다른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남성 인구 전체를 전쟁에 총동원 할 수는 없으며, 그 이유는 비슷하다. 즉, 많은 수가 너무 어리거나 나이가 많거나 병들었거나 심리적으로 전쟁 관련 스트레스를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성별에 따라 직업을 나누고, 남자와 여자들이 각기 다른 일에 익숙해지도록 교육을 받는다. 따라서 사냥을 하고, 가축을 돌보고, 땅을 개간하는 일이 남성의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노동을 할 남성들을 모두 징발한다면 그 사회의 경제가 유지될 수가 없다. 물론 여성들이 몇몇 부분에서 남성들을 대체할 수는 있지만 기술을 습득시키고 발전시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을 요한다. 아울러 집단의 인력(전투력)을 다른 집단과의 경계한 한 부분에만 집중시키면 경계 밖에 여성과 아이들, 재산 등은 다른 방향에서 가해질 수 있는 또 다른 위험에 노출된다. <중략> 여성들의 역할은 후방을 유지하고, 밭은 일구고, 가축을 돌보며, 부상자를 치료하는 것이다. 전쟁은 구성원 모두의 일이기는 하지만 직접 싸우는 것은 대개 남성의 몫이었다.

로젠스H, 킬리 [원시전쟁] 중에서 발췌


정리하자면, 전쟁은 전장에서 싸우는 전투병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용감히 싸우는 군인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전투 인력 말고도 수많은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식량과 보급품을 지원할 인력자원이 반드시 필요하고, 후방 지원 없는 전쟁은 승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입대하는 것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근시안적 사고의 결과이다.

입대하지 않아도, 군인이 아니어도 대한민국 모든 국민에게는 국방의 의무가 있다.

 


대한민국헌법 제39조 

①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②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불이익한 처우'라 함은 법적인 불이익을 의미로, 병역의무 이행을 직접적인 이유로 차별적 불이익을 가하거나 또는 병역의무를 이행한 것이 결과적, 간접적으로 그렇지 아니한 경우보다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병역의 의무를 다 했어도, 그것으로 인한 사회적 보상은 없다는 말이다. 군가산점이나 승진에 있어 가산점을 부여해서 병역을 이행하지 못한 사람을 차별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이 부분은 글 뒷부분, 대안을 이야기할 때 더 다루겠으니, 혹시라도 이 부분에서 할 말이 많으신 분들은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글을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현대전은 국가 총력전이기 때문에 넓은 의미의 국방의 의무에는 병역의 의무뿐만 아니라 방공·방첩, 군작전에 협조할 의무, 국가안전보장에 기여할 의무, 전시근로동원에 응할 의무 등이 포함된다. 즉, 국민개병(國民皆兵)의 원칙에 따른 「병역법」상의 징집의무뿐만 아니라 「민방위기본법」에 의한 방공, 응급적 방재(防災), 구조복구 및 군작전상 필요에 의한 노력지원 등이 있다. 또 「향토예비군설치법」에 의한 예비군의 복무 등도 모두 해당법률의 규정범위 안에서 평생의 의무로 되어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국방의 의무(國防─義務))]




제2차 세계대전은 여성 노동력의 사회화에 양적인 면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크게 기여했다. 전쟁 특수와 남성 노동자의 대규모 징집으로 미국은 군수산업을 비롯한 산업 전 영역에서 심각한 인력 부족사태를 겪었다. 여성 노동력 외에는 대안이 없었고, 그러자면 노동 시장의 전통적인 성 역할에 대한 인식부터 허물어져야 했다.
‘리벳공 로시’의 저 우람한 팔뚝은 그러니까, 유럽 전선의 나치를 겁주고 그들과 싸우는 미군 청년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군함과 전투기를 생산하는 군수공장 남성 근로자들의 인식을 겨냥한 거였다. 미국 전쟁사 속 여성(주미영 지음, 인간사랑)은 2차대전 4년 동안 약 600만 명의 신규 여성 유급노동자가 탄생했다는 사실과 함께 다양해진 여성 직종 통계를 인용하고 있다. 미국 경제사 백과사전은 미국 여성 노동자 수가 1940년 1,200만 명에서 44년 2,000만 명으로 57% 급증했고, 방위산업체의 경우 20~34세 미혼 남성 종사자가 170만 명인 반면 여성 노동자는 410만 명에 달했다고 기록했다. 그들 상당수는 건국이래 아내이자 주부로서 제 역할을 한정해왔던 중산층 백인 기혼 여성들이었다.
출처: 한국일보 [애국으로 '조작'된 모델… 여성파워의 상징이 되다]




왜, 남자만 입대하는가?

국방의 의미는 국가 수호를 위한 넓은 의미의 모든 활동을 뜻하는 것이고 병역의 의무는 하위 법률에 정하고 있다. 즉, 국방의 의무와 병역의 의무는 다른 개념이다.


병역법 제3조(병역의무) 

①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대한민국헌법」과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여성은 지원에 의하여 현역 및 예비역으로만 복무할 수 있다.  <개정 2011. 5. 24., 2019. 12. 31.>

② 이 법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병역의무에 대한 특례(特例)를 규정할 수 없다.

③ 제1항에 따른 병역의무 및 지원은 인종, 피부색 등을 이유로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

④ 병역의무자로서 6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의 형(刑)을 선고받은 사람은 병역에 복무할 수 없으며 병적(兵籍)에서 제적된다.  <개정 2013. 6. 4.>


그렇다면 병역의 의무는 왜 남자에게만 있는가? 여성이 전투에 적합한 신체가 아니라서?

나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다시 전쟁의 기원으로 돌아가보자. 그리고 질문해보자.




전쟁은 누구에 의해 왜 실행되는가?

앞서 전쟁의 기원을 살펴봤듯이 모든 전쟁은 자원 재분배 결과를 낳는다. 고상하게 말해서 자원의 재분배이지, 그 실상은 약탈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이 패자의 재산을 취하고, 그에 식솔을 노예로 삼아 경제적 이득을 보는 결과가 된다. 성공하면 보상이 큰 게임과 다르지 않았다.

고대국가는 부계사회로 권력은 남성에게 있었고, 재산의 소유는 오직 권력이 있는 남성만이 가능하다. 여성은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딸로 존재하고 독립적이고 자발적인 존재로 인정받지 못했던 시절이다. 그런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앞서 질문에 답은 이렇게 된다.


전쟁은 권력자에 의해 결정되고 실행되었으며, 그로 인한 보상도 그들을 위한 것이었다.


전쟁은 패자의 재산과 노예를 얻을 수 있는 기회였고, 여성(엄밀히 말해서 여성뿐만 아니라 천민, 노비, 노예들도 포함해서)은 이 기회에 초대받은 적이 없다. 애초에 여성의 자리는 없었다. 역사적으로 입대는 남성들의 특혜로 시작된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이런 직접적인 특혜는 사라졌고, 소수 권력자를 제외하고는 전쟁에 참여하는 것(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이득보다는 위험 부담이 더 큰 일이 되었다.


전쟁의 역사는 약탈의 역사이기도 하다.



여자도 군대가라!

여자도 국방의 의무를 다하라!

권리는 누리며 의무를 다하지 않는 여성이기주의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한 군필자에 대한 가산점 제도는 정당한 보상이다.

군대 다녀와야 제대로 된 애국심이 생긴다. 애 안 낳는 여자는 군대 가라!

군대 경험이 없는 여자들은 공동체의식이 부족해서 사회생활이 어렵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48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왔고, 입대하지 않았고, 아이를 낳지 않았다.

병역의 의무가 역차별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나는 졸지에 애국심도 없는 이기주의자에 공동체의식 없는 사회부적응자가 되어버린다. 평범한 개인으로 나는 가끔은 이기적인 행동을 하고 국가에 실망하지만,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국가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 책임감은 차고도 넘친다. 대한민국 국민 어느 누가 안 그렇겠는가?



논리보다는 분풀이에 가까운 여성 입대론은 여성의 입장에서는 초대받은 적도 없는데, 거부했다고 비난 받는 꼴이니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모든 싸움에서 진정한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냉철한 상황판단과 싸우고 있는 적을 잘아야 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병역의 의무로 남성들이 차별을 받는다면, 가해자는 누구인가? 여성인가? 국가 시스템인가?




병역의 합리적 보상과 제도 개선

이제, 대안을 이야기할 때다.

병역의 의무가 역차별이라는 주장은 군가산점 제도의 부활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된 근거이다. 역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취업에 가산점 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논리인데, 그렇다면 차별은 해소될까? 1999년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문을 보면 군가산점 제도가 성별과 신체 건강 여부에 따른 차별이 되며, 평등권을 침해함으로 위헌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입대가 불가능한 사람들의 경우 자신의 선택과 상관없이 차별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혹시라도 아직도 ‘여자도 군대 가라’라고 주장하고 싶은 분들이 있을까 봐 분명하게 정리하고 싶다. 역사적으로 군대에는 여성의 자리가 존재하지 않았고 이것은 여성의 의지와 관계없이 여성이 권력에서 소외되어 발생한 문제였다. 군대의 시작이 이러했으니, 지금까도 여성의 군 입대는 제한적이고 특별한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물론 세상이 변했다는 것에 동의하고, 여성 징집제도를 시행하는 국가가 있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여성 입대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 국방부가 여성의 의무 병역을 받아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봤으면 한다. 국방부는 여성 의무 병역을 생각도 않고, 준비도 안 무작정 ‘입대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분풀이로 밖에 안보이기 때문이다.


병역은 의무이지만 개인의 숭고한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 그렇게 때문에 정당한 보상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 보상이 또 다른 차별을 낳는 방식은 피해야 한다. 입대가 불가능한 사람들에게 군가산점 제도나 군 복무 기간 인정 호봉제, 승진 혜택의 방식은 차별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병의 월급을 대졸자 월급에 가깝게 현실화하거나, 징병제에서 모병제로의 전환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군대가 달라져야 한다. 군 복무기간을 인생에 낭비라고 느끼게 된다면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 사회적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모적인 ‘성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공동체를 함께 지탱하는 ‘협력’ 파트너로 건설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여성 징집문제도 사회적 협의가 된다면 가능한 문제다.




여성에게 공정한 기회를!

역사적으로 여성은 군대에 초대된 적도, 그 초대를 거부한 적도 없다. 오늘날에는 차별을 겪는 당사자이지만, 대화 파트너로 존중 받기는커녕 애국심 조차 기대할 수 없는 이기주의자로 폄하되고 있다.


다시 글 서두에 언급되었던 면접장으로 돌아가보자.

‘여자는 군대 안 갔으니까 남자보다 월급 덜 받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군대 갈 생각 있나’는 질문은 여성지원자가 아닌, 정치권에 던져야 할 질문이 아닐까?

‘병역의 의무에 대한 보상은 적절한가?’, ‘여성 징집제도’가 필요한가?로 질문을 바꿔서 말이다.

문제가 있다면 사회적 합의를 거쳐 국가 시스템을 이용해서 제도화하고 개선해야 한다. 여성을 포함한 대한민국 국민 누구라도 차별 받지 않고 공정한 기회를 누려야한다는 점을 부인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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