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전쟁과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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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도 말고, 먹지도 말고, 가지도 말자”는 ‘보이콧 재팬’ 운동이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는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8월 14일]이 다가오고 있다.

루나컵은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을 날을 맞으며, 전쟁과 여성, 그리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전쟁과 여성

전쟁은 폭력적이다. 전쟁의 목적이 폭력을 끝내기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또는 평화를 찾기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전쟁’이 가진 폭력성을 감출 수는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는 역사 속에서 전쟁의 잔인함을 확인해왔으며 미래의 전쟁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특히 여성과 노약자들, 소수자 집단은 전쟁 중 폭력과 약탈 행위에 더욱 쉽게 노출되고 그 중 여성들은 성별로 인해 특정적으로 가해지는 추가적인 폭력으로 인해 다른 차원의 고통을 겪게 된다. 이를 전쟁 중에 당연히 발생하는 피해로 단순히 치부해서는 안 된다. 국제법상 전쟁 중 행해지는 여성폭력은 고문 행위이며, 전쟁범죄이고 강간의 경우 반인도적 범죄로 명시하고 있다. 한 집단을 말살하려는 의도로 성폭행이 행해졌을 시, 국제법은 이를 학살(genocide)로 보고 있다. 강제적인 성적 행위 혹은 여성의 ‘합의’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당시의 상황이 위력과 강압에 의해 여성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불가능했다면 이것은 반인도적 범죄로 분류된다.

강간을 포함한 성폭력은 전쟁의 도구로서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Rule of Fear”라고 불리는 공포의 법칙은 전쟁에서 중요한 전략이다. 고의적으로 적과 그 가족, 커뮤니티, 문화를 파괴하여 상대 군 개인과 그 집단의 전의를 저하시킨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죽는 것보다 자신의 딸과 부인이 성폭행을 당하는 것이 더 두려울 수 있고 집단적으로는 적군의 아이를 임신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키워 공동체를 파괴하기도 한다. 여기서 적국/반대측 여성들만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IS가 같은 종교계인 수니 무슬림계 여성들로 하여금 IS 대원들에게 성을 상납하도록 한 요구를 거부한 여성들이 처형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전쟁을 수행하는 기계로서의 병사들에게 유흥과 “연료”를 제공하기 위해 여성들과 소녀들이 사용된다. 전쟁 중에 여성은 인간이 아니라 정말 도구로서 존재한다.

전쟁 중 겪게 되는 성폭행 자체도 끔찍하지만 그 경험이 생존자들의 삶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강간을 당한 경험이 가져오는 영향과 상처는 폭행 그 자체의 문제보다 훨씬 더 큰 여파를 남긴다. 생존자들은 고통스런 감정, 정신적 황폐화, 신체적 질병, 사회적 배척 등을 겪으며 그들의 남은 삶 역시 철저히 파괴된다. 순결을 중요시하는 가부장적 문화에서 강간을 당한 여성은 ‘순결’을 잃은 것을 숨기려 한다.  보스니아 내전과 IS의 폭력으로부터 생존한 여성들 중 많은 경우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제3자의 이야기라며 폭행당한 상황을 전하고 있다. 자신이 포로로 끌려갔고 많은 여성들이 강간을 당했지만 자신만은 성폭행을 당하지는 않았다고 증언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돌아와도 가족들과 친지들, 이웃들이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란 걸 알기 때문에 더 이상 질문은 하지 않는다.



남들의 시선도 그렇지만 스스로에게도 지우고 싶은 기억이기도 하다.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마치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한다. 그렇게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수많은 여성들이 자살을 시도했고, 처음 입을 여는데 40년이 걸리기도 했으며, 아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여성들이 죽기 전까지 비밀에 부치며 고통 속에 생을 마감할 것이다.

신체적으로는, 약물의 주입과, 성병, 잦은 유산으로 인해 대부분의 여성은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다. 즉 이들이 ‘평범한’ 여성들처럼 살기는 어렵다. 성 노예제도는 그 자체로서 피해 여성의 성적 권리와 출산권을 침해했고 계속해서 생존자의 성생활과 출산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또한 남성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로 많은 생존자들이 고립된 상태로 은둔생활을 한다.

결국 이 모든 이유로 인해 대다수의 생존자들은 외롭게 빈곤한 삶을 살아야 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게 될 것이다.



역사를 바꾼 그날의 용기

1991년 8월 14일은 故 김학순 할머니의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 공개 증언하여 세상에 알린 역사적인 날이다.

증언을 결심한 그날의 용기로 전세계적에 일본군의 만행이 알려졌고, 피해자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운동이 시작되었다.




일본군대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갔던 김학순입니다.

신문에 나고 뉴스에 나오는 걸 보고 내가 결심을 단단하게 했어요.


아니다.이거는 바로 잡아야 한다.

도대체 왜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오.


그래서 내가 나오게 되었소.누가 나오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

내 스스로 아 이제 내가 나이가 70이 다되었소.


이만큼 나이먹고 이제 죽어도 괜찮아.

나올 때 좀 무서웠어요. 죽어도 한이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은 꼭 하고야 말 거요.

언제든지 하고야 말 거니까.


내 팔을 끌고 이리 따라오라고. 따라간다고 하곘어요?

무서우니까 안 갈려고 반항을 하니까 발길로 차면서


내 말을 잘 들으면 너는 살 것이고 내 말에 반항하면

너는 여기서 죽는 거야. 죽고. 결국은 그야말로


참 계집애가 이 꽉 물고 강간을 당하는ㆍㆍㆍ

그 참혹한ㆍㆍㆍ.


말이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못다 하겠어.


이떄 이것은 알아야 합니다.

알아야 하고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으니까.    



1992년 1월 8일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시작되었고, 수많은 시민단체와 시민들이 연대하여 28년을 이어와 2019년 8월 14일 [제2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날]에는 1,400번째 수요집회를 앞두고 있다.


70년이 넘도록 계속되는 기다림

세계 2차대전 이전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200,000명에 달하는 일본군 “위안부”들이 일본제국군에 의해 성 노예로 학대 받았다. 여기에는 다른 전쟁과 비교하여 두 가지 다른 점이 있다. 하나는 철저하게 제도화된 성 노예 체제를 운영하였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증거와 증인이 끊임없이 나오지만 일본 정부는 해당체제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이 자행한 “위안부”제도는 피해여성들에 대한 합법화된 군대 내 “강간제도”였다. 난징학살에서 일어난 대규모 살인과 강간이 국제사회의 분노를 불러일으키자 일본군은 “위안소”를 각지에 설립하여 강간사건 발생율을 낮추고 성병을 예방하고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고자 성 노예화 제도를 발전시켰다. 다른 사례들보다 국가의 ‘법적 책임’이 강력하게 요구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 동안 축적된 증언과 자료들은 일본정부가 책임을 인정해야 하는 증거로 충분하지만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진정한 사과는 고사하고 “일본군 위안부는 자발적 참여자들이었다”라는 말로 피해자들을 두번 죽이고 있다.



평균 연령 91세, 21명의 생존자

2019년 여성가족부에 등록되어 있는 일본위안부피해자 생존자는 21명, 이 분들의 평균나이는 91.1세이다.

일본은 이제 사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일본은 생존자가 사라지는 날,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채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로 남게될 것이다.



정의의 날개짓으로 ‘나비효과’을 꿈꾸며

‘나비’는 위안부 희생자의 상징생물로, 위안부 희생자뿐 아니라 모든 여성이 억압과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날개짓을 하기를 염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피해 할머니들이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 ‘나비’처럼 자유롭게 날갯짓하기를 염원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또한 환생을 의미하기 때문에 피해자 분들의 환생을 염원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는 8월 14일은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어 두번째 맞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

74년전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이했지만, 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은 아직 광복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1,400회를 맞는 이번 수요시위에 뜻을 함께 하는 많은 분들이 참여해 정의의 날개짓으로 ‘나비효과’실현되길 간절히 바래본다.

'끝까지 싸우겠다' 당당하게 말씀하시던 故김복동 할머니를 기억하며, 더 당당하게 사과를 요구하는 수천, 수만의 김복동을 만나길 바래본다.

진정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 일을 한 과거가 아니라, 부끄러운 사실을 반성하지 않는 것이다.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인권운동가 ‘김복동’

다큐멘터리 <김복동>(8월 8일 개봉)은 지난 1992년부터 올해 1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27년 동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보는 작품이다.

김복동 할머니는17살이 되던 1942년께 직장인 방직공장에서 퇴근하다가 그 근처에서 군용 트럭에서 내린 군인에게 동료 2명과 함께 납치됐다. 이후 일본으로, 일본에서 또 만주로 끌려가 끔찍한 피해를 당하셨다. 해방 뒤 밀수선을 타고 간신히 귀국했다.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대표는 “할머니는 피해 경험으로 얻은 죄책감과 피해의식으로 평생을 괴로워하셨다”며 “찾아뵐 때마다 할머니의 얼굴에 드리운 괴로움과 외로움을 보며 안타깝고 아팠다”고 회상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1993년 유엔인권위원회에서 피해사실을 증언을 시작으로 미국, 일본, 유럽 등의 여러 곳에서 일본군 ‘위안부’피해사실을 생생하게 증언하였고, 나아가 전 세계 ‘전쟁 중 성폭력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을 위한 ‘나비기금’을 만들었다.

2015년에는 분쟁 지역 피해아동 지원과 평화활동가 양성에 써달라며 평생 모은 돈 5000만원을 ‘나비기금’에 기부했다. 나비기금은 이 돈으로 ‘김복동 장학기금’을 만들었다. 김복동은 같은 해 국제 언론단체가 선정한 ‘자유를 위해 싸우는 영웅’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 등과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공익사단법인 정(이사장 김재홍·김용균)이 제정한 ‘바른의인상’ 첫 수상자로 선정됐다. 당시 공익사단법인 정은 “김복동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아픔을 안고 있으면서도 거의 전 재산을 후진교육을 위해 기부했으며 평화와 통일의 신념과 한일 과거사에 대한 바른 역사관을 전파시켰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출처: 정의연대기억 http://www.womenandwar.net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http://www.womenandwarmuseum.net

        국제엠네스티  https://amnesty.or.kr/15078

        여성가족부     http://www.hermuseum.go.kr

Special thanks | 이번 행사에 도움과 응원을 주신 [전쟁과 여성 박물관] 관계자분에게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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